‘미국 다음’ 세계는? 패권이동 지도를 그리다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23) 조반니 아리기
Giovanni Arrighi

한겨레
원문
기사전송 2009-12-11 20:15

[한겨레]

조반니 아리기는 1937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나 1960년 밀라노 보코니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짐바브웨의 로디지아대에서 강의하면서 이매뉴얼 월러스틴을 만나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1979년 월러스틴, 테런스 홉킨스와 함께 미국 빙엄턴대의 페르낭브로델센터에 자리를 잡고 세계체계 분석에 주력했다. 세계 자본주의의 기원과 변화를 다룬 <장기 20세기-화폐, 권력, 그리고 우리시대의 기원>(그린비)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모티브북)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21세기의 계보>(길)가 국내에 번역돼 있다. 그의 세계체계 분석은 월러스틴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지만, 최근 경제권력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이전했다는 사실을 더 강조한다. 지난 6월18일 볼티모어의 자택에서 지병인 암으로 숨졌다.

아리기는 자본주의의 변천의 동학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지금 미국의 시기에는 선별 지역을 심층적으로 포섭하고 다수 지역을 배제한 채 축적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더 많은 군사적 개입이 없으면 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어려운 탓에 결국엔 새로운 카오스가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이다.

앞서 오랜 조짐을 보이다 2008년도에 본격적으로 폭발한 세계 경제위기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질문들이 줄지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이 위기는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인 위기인가? 위기는 왜 미국발 금융위기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가? 위기에 대한 세계 각 지역의 대응과 충격파는 왜 상이한가? 이 위기하에 각 지역의 사회운동은 어떤 대응들을 하고 있고 또 할 수 있는가?

이어지는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 현 상황 아래서 그 어느 때보다 마르크스적 질문과 탐구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일시적 불균형 때문에 생기고 피해갈 수도 있는 ‘위험’(risk)의 문제로가 아니라, 내적·구조적 속성에서 나오는 진정한 ‘위기’(crisis)로 연구한 것은 마르크스가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위기의 의미를 좀더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전개되었던 자본주의 위기들, 예를 들어 19세기 말의 위기, 1930년대의 위기, 1970년대의 위기와 비교하여 현재 위기가 갖는 함의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의 분석이 역사적 자본주의라는 사고와 만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며, 조반니 아리기의 중요성이 발견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마르크스에게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는 무엇보다 ‘역사적 경향’을 통해 설명되었는데, 그 의미는 위기가 항상 그 위기를 상쇄하려는 반작용의 동학과 동시에 작용하며, 역사적으로 상이한 각 시기에 위기의 구체적 동학은 매우 상이한 역사적 해석을 통해 설명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실의 역사적 자본주의 내에서 이런 위기와 위기의 해소는 무엇보다 새로운 기술적 동학의 등장, 새로운 축적 영역의 형성, 다수 국가들 사이의 경쟁과 계서제(階序制)의 동학, 계급 간 힘관계의 변화, 금융으로의 전환을 통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아리기의 논의의 출발점인 19세기 말~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를 살펴보자. 아리기는 19세기 말 세계 자본주의의 변화는 독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국가독점자본주의’ 모델로 환원해 설명할 수 없고, 19세기 자유무역 제국주의라 할 수 있는 영국 중심 경제질서의 쇠퇴와, 20세기 법인자본주의에 기반한 초국적 기업의 네트워크를 형성한 미국 주도 세계 자본주의의 등장이라는 맥락 속에서, 그리고 이는 식민주의의 위기와 노동 계급의 등장이 가져온 영향력 속에서 이해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리기는 월러스틴과 더불어 시작된 ‘세계체계 분석’의 넓은 틀 안에서 작업을 전개하였는데, 세계체계 분석의 강점 중 하나는 근대세계를 하나의 동일한 ‘근대’라는 시간 속에 있는 것으로 설정함으로써 근대성의 요소론이 빠지기 쉬운 근대화론의 함의와 근본적으로 단절하고, 자본주의를 중심-주변이라는 공간적 불평등을 수반하는 세계경제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역사적 자본주의가 설명해야 할 각 시기 안에서는 늘 쟁점이 남아 있었는데, 아리기는 세계체계 분석에 대해 제기된 대부분의 논쟁을 ‘비논쟁’으로 규정하면서 월러스틴에 대한 내적 비판을 통해 쟁점들을 좀더 분명히 하는 동시에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쟁점은 근대 세계체계 등장에 대한 역사-정세적 설명방식, 자본주의 고유의 동학으로 자본주의라는 시간대 속에서 중첩적으로 작동하는 상이한 시간대의 동학을 설명하는 문제, 세계 헤게모니의 교체를 내적 동학을 통해 설명하는 방식, 각 세계 헤게모니 시기의 역사적 자본주의가 갖는 차별성,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대한 평가 등 핵심적 논점들과 연관되어 있다.

그의 노력은 무엇보다 <장기 20세기>에 집중적으로 드러나는데, 그는 세계체계 분석이 제시하는 자본주의 장기추세에 대한 설명이 자본주의의 내적 동학에 기반한 설명이라기보다는 경험주의적 설명방식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체계적 축적순환’과 국가 간 체계의 모순적 결합을 통해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천의 동학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이로부터 헤게모니의 등장을 실물적 팽창과 금융적 팽창 국면으로 구분하고, 금융적 팽창과 더불어 시작되는 신호적 위기, 그리고 금융적 팽창 아래서 국가 간, 기업 간 경쟁이 촉발되고, 그 정도가 격화되면서 초래하는 최종적 위기 및 그에 따른 체계의 카오스라는 설명 논리가 등장하게 된다.

그런데 이 논리는 네그리의 비판을 반박하며 아리기가 강조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역사가 늘 같은 논리의 반복일 뿐이라는 ‘동일성의 영원회귀’가 아니다. 아리기는 헤게모니의 역사적 시기 아래서 자본주의가 얼마나 상이한 구조적 특성을 띠게 되는지, 그것이 내적 속성과 지리적 배치, 계급적 배치에 이르는 모든 면에서 어떻게 상이한 특징을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 어떤 새로운 모순 구조가 형성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 함의를 우리는 지금의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과정에서 발생하는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위기가 갖는 특이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의 위기는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미국의 자본 수익성 위기에서 시작된 하나의 과정의 끝인 셈인데, 아리기에 따르면 1980년대부터 전개된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이 수익성 위기를 금융적 팽창을 통해 반전시키려는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나아가 기술혁신에 기반한 새로운 체계적 축적체계의 수립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금융적 팽창은 1990년대 미국 ‘신경제’처럼 짧은 경이적 순간인 ‘벨 에포크’를 동반할 뿐, 오히려 체계 전반의 교란을 키워 위기는 점점 더 체계 전체로 확산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19세기 말~20세기 초와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들에서 다르다. 그 때문에 세계 자본주의가 새로운 헤게모니의 등장과 더불어 새로운 순환을 쉽게 되풀이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런 특징들에는 세계의 금융과 군사력이 여전히 미국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 발전주의 체제가 폐기됨에 따라 배제된 주변부 지역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 부담을 다른 지역으로 전가하거나 노동에 부담을 전가하는 이외에 기술적 동학의 측면에서 이윤율을 다시 상승시킬 계기를 찾아내기 어렵다는 점 등이다.

무엇보다 19세기 세계 끝까지 팽창했던 영국 중심의 자본주의 시대가 이 팽창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면서도 더 큰 모순을 잉태해갔던 것과 달리, 지금 미국의 시기에는 끝없는 팽창이 아니라 세계경제의 재편을 통해 선별 지역을 심층적으로 포섭하고 다수 지역을 배제한 채 축적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배제된 지역에 대한 통제 불가능성을 확대시켜, 헤게모니 국가로선 더 많은 군사적 개입을 통하지 않고는 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고, 결국엔 새로운 체계의 카오스가 이어질 가능성을 키운다는 점이다.

그러면 미래는 어떻게 되는가. 아리기는 다소 암울한 아나키적 상황이 펼쳐지거나 중국을 중심으로 비교적 균등한 교역이 펼쳐지는 두 가지 전망 사이에서 동요해 온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와 중국에 대한 그의 다소 과도한 낙관은 그의 생의 마지막 순간에선 유보적인 관망으로 다시 돌아서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세계경제 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6월 그가 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72살로 사망하였지만, 그가 남긴 쟁점들은 향후 계속될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지속적으로 논쟁의 한가운데 위치할 것으로 보인다.

백승욱/중앙대 교수·사회학

백승욱은 중국의 노동문제를 ‘단위체제’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분석한 논문으로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빙엄튼대 페르낭브로델센터 객원연구원과 한신대 중국지역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로 있다. 사회진보연대 운영위원이기도 하다. <세계화의 경계에 선 중국>(2008), <자본주의 역사 강의>(2006),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세계체계 분석으로 본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2005) 등의 책을 썼다.

by 서울시장 | 2010/06/07 18:10 | 트랙백 | 덧글(0)

‘다중’은 네트워크 투쟁으로 ‘제국’에 맞선다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⑭ 안토니오 네그리 Antonio Negri

 
[한겨레]



안토니오 네그리는 1933년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태어났다. 독일 역사주의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68혁명 이전까지 인식론, 철학, 정치학, 국가론 등에 관해 연구하고 책을 썼다. 1959년 이후 자율주의적인 좌파잡지(정치집단)에 참여했다. 1970년대에 일어난 아우토노미아 운동에 감명을 받으면서 자율주의 사상을 정립해 나갔고, 1970년대 말 이탈리아의 억압적 상황에서 프랑스로 망명했다. 그 와중에 그의 대표 저작인 <마르크스를 넘어선 마르크스>가 출간됐다. 1980년대에는 프랑스에서 가타리를 비롯한 탈근대이론가들, 이탈리아 망명자들과 함께 연구와 정치 활동을 병행했다. 1997년 마이클 하트와 <제국>의 집필을 끝낸 뒤 이탈리아로 돌아가 수감됐다가 2003년 자유의 몸이 됐다.

근대적 주권은 네트워크 권력에 기반한 ‘제국적 주권’으로 변형되어 간다. 새로 등장하는 ‘다중’은 특이성을 보존하면서 소통을 통해 공통성을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주체다. 21세기 변혁운동의 중요과제는 다중의 자기조직화를 통해 절대적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이다.

안토니오 네그리는 마이클 하트와 공동으로 저술한 <제국>(2000)과 <다중>(2004)의 저자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 두 저작은 1970년대 이래로 일관된 연속성을 갖고 전개돼온 그의 오랜 작업의 결실이다. 네그리는 또 하나의 지배 장치로 변질된 공산당과 종래의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면서 자본의 지배를 효과적으로 분쇄할 수 있는 새로운 마르크스주의, 곧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켜 나갔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의 사상은 지금까지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그는 자본주의적 지배체제가 제국주의에서 제국으로 이행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으로 주체성의 측면에서는 노동자를 축으로 한 ‘계급’ 주체성에서 다양한 주체들의 배치로서의 ‘다중’으로 이행했다고 파악한다.

제국주의에서 제국으로

네그리는 <제국>에서 국민국가에 기반한 근대적 주권이 네트워크 권력에 기반한 제국적인 주권으로 변형되어 간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몇 가지 측면에서 부연될 수 있다.

근대적 주권에서 제국적 주권으로의 이행은 우선 영토적인 국경 안에 거주하는 국민들을 기반으로 구성된 근대적인 국민국가들과 그 국가들 사이의 지배와 종속 관계인 제국주의의 시대가 종언을 고했음을 의미한다. 그 대신 이제는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초국적인 자본과 그러한 자본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국제기구들(유엔·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세계무역기구 등)이 서로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지배하는 제국의 시대가 됐다. 따라서 국민국가 시대에는 국경 내부와 외부의 차이가 중요했지만, 제국적 주권하에서는 국경과 외부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모든 것은 이제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전개되며, 모든 전쟁은 제국 안의 시민전쟁, 즉 내전이 된다.

제국의 시대에도 위계와 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더욱 정밀하게 강화된다. 위계와 차별은 생물학적 차이나 가시적 차이에 의존하는 인종주의에서 벗어나, 더욱 유동적이고 유연한 일상적인 체제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이고 잔인해지는 일상적인 실행체제 속에서 관철된다. 제국적 주권은 하나의 중심적인 갈등을 둘러싸고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 미시적 갈등들의 유연한 네트워크를 통해 조직되는 것이다.

제국의 또다른 특징은 생산의 성격 변화다. 네그리에 따르면 오늘날의 자본주의에서는 이전과 달리 잉여가치의 생산에서 거대 공장의 노동력이 차지했던 중심적 역할이 쇠퇴하고, 비물질적이고 소통적인 노동력이 대신하고 있다. 여기서 비물질적 노동이란 “서비스, 문화 상품, 지식, 또는 소통과 같은 비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는 노동”을 의미한다. 왜 이러한 변화가 중요할까? 그것은 이런 노동의 형태 속에는 협동이 노동 자체 속에 완전히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곧 비물질적 노동은 직접적으로 사회적 상호작용과 협동을 포함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노동이 더 이상 자기 외부의 적대적 타자인 자본에 의해 가치증식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가치화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네그리는 바로 여기에서 제국의 질서에 이미 내재해 있는 공산주의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럼에도 제국 권력의 지배가 결코 완화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네그리의 말로 요약하자면, 제국 권력의 효율성은 폭탄에 의한 파괴에, 화폐에 의한 판결에, 소통에 의한 공포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다중, 소통하는 자율적 집합주체의 등장

<제국>이 지배에 대한 분석이라면, <다중>은 부제인 ‘제국 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에서 볼 수 있듯이, 전쟁의 와중에 등장하는 다중과 그에 따른 사회운동의 방향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서 네그리가 말하는 다중(multitude)은 무차별적인 무리로서 ‘대중’(mass)이 아니라 특이성을 보존하면서 소통을 통해 공통성을 만들어 가는 능동적인 주체다.

네그리는 이전에도 전통적인 노동자계급이라는 개념 대신에 주변층이나 실업자, 여성, 학생 등을 포괄하는 사회적 노동자 개념을 사용해 왔다. 다중은 이 개념을 좀더 확장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다중은 군중, 인민, 대중, 국민, 계급 등과 같은 종래의 정치적 주체 개념과 대비되는 새로운 주체 개념이다. 다중은 서로 다른 문화, 인종, 종족, 젠더, 성적 지향 및 상이한 노동형태와 생활방식, 세계관, 욕망 등과 같은 수많은 내적 차이들로 이루어져 있어 결코 단일한 정체성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리고 다중은 계급보다 훨씬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자본주의 아래에서 살고 일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특히 직접 임금노동을 하지 않는 다양한 주민층을 포함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주체로서의 다중의 등장과 함께 사회운동의 투쟁방식과 방향도 변화한다. 1960년대에 나타난 게릴라 투쟁 모델은 집중제의 마지막 표현이었으며, 네트워크 투쟁으로 나아가는 과도적 형식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네그리에 따르면 1970년대 이탈리아의 자율운동에서 나타난 네트워크 투쟁은 이후 사회운동의 방식으로 널리 확산됐고 대안세계화운동에서 절정에 도달했다.

대의제를 넘어 절대적 민주주의로

이러한 네그리의 논의는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사고로 이어진다. 그는 민주주의가 진전하는 데 가장 주요한 장애를 대의 민주주의에서 찾는다. 대의 민주주의는 아래로부터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다중의 역능구성 과정을 통해 기존 권력을 혁신해 나가는 구성권력 전략을 사고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네그리는 대표를 만들어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표화를 막으면서 다중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조직화해 나가는 방향을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21세기 변혁운동의 중요과제는 바로 민주주의라는 탈을 쓴 대의제를 파괴하고 그 대안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대안구성은 대안 제도를 만드는 데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관련 주체들이 아래로부터 욕망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사회관계를 구성해가는 것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말했던 절대적 민주주의다.

네그리의 이런 주장은 많은 쟁점과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기존의 좌파 운동에 대해 비판점을 형성하고 있다. 네그리는 당 형태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네트워크 형식의 운동을 강조하고 대안 세계화 운동, 다양한 소수자 운동과 자율운동의 활성화에 희망을 걸고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을 분석했지만 노동을 구성(노동자 계급을 조직)하려고 했듯이, 네그리는 제국을 분석하지만 대중을 구성(구성권력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이다.

윤수종/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윤수종은 서울대 사회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오래 전부터 이탈리아 아우토노미아(자율주의) 사상을 한국에 소개해 오고 있으며, <진보평론> 편집위원으로 있다. 현재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자유의 공간을 찾아서>, <다르게 사는 사람들>(편저)이 있고, 역서로 <분자 혁명>, <기계적 무의식>, <세 가지 생태학>, <카오스모제>, <성혁명>, <제국>, <야만적 별종>, <맑스를 넘어선 맑스>, <정치의 전복> 등이 있다


by 서울시장 | 2010/06/07 17:58 | 21세기 진보지식인지도(한계레) | 트랙백 | 덧글(0)

[퍼온글] '제국'을 통해본 신맑스주의(2005)-안토니오 네그리

http://blog.naver.com/sibelnam/10074623126

『제 국』을 통 해 본 맑 스 주 의

 

 

 

차 례

 

 

 

Ⅰ. 序 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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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Ⅱ. 本 論

…………………………………

2

1. 세계 질서

…………………………………

2

1) 세계 질서의 변화

…………………………………

2

2) 세계 질서의 변화에 따른 권력의 이동

…………………………………

2

3) 역사를 통한 제국개념의 발전

…………………………………

3

 

 

 

2. 생체 정치적 생산

…………………………………

4

1) 생체 정치적 특성

…………………………………

4

2) 미셀 푸코의 분석

…………………………………

4

 

 

 

3. 삶의 생산

…………………………………

5

1) 유물론적 해석

…………………………………

5

2) 들뢰즈, 가타리의 관점

…………………………………

6

3) 이탈리아 맑스주의자

…………………………………

6

 

 

 

4. ‘제국’에서의 대안들

…………………………………

6

 

 

 

 

 

 

Ⅲ. 結 論

…………………………………

9

 

 

 

 

 

Ⅰ. 序 論

 

   Negri의 이론을 살펴보기 전에 우리는 제국이라는 개념을 알아두어야 한다. 제국을 굳이 정의하자면 ‘전지구적 규모로 확대된 자본주의 체제에 걸 맞는 새로운 권력기구, 체제’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가 확대되어 가면서 기존의 세계질서를 구성하던 국민적, 민족적 경계가 허물어져가는 상황에서 기존의 국가들이 공평하게 지니고 있던 권력이 어떻게 전지구적인 권력으로 형성되는가라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제국'은 지금 형성중인 그 기구, 체제를 뜻하며 전지구를 통치하는 주권권력의 초월성(네크워크 권력에 기반한 제국적 주권)과 국민국가적 영토의 경계를 넘나드는 초영토화, 그리고 국경을 초월한 이주자와 인구의 이동을 그 새로운 지배 논리와 구조의 구성 요소로 한다. 요컨대 제국은 현재 지구화된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지배적 질서이자 구조이며, 전지구적 차원에서 경제 및 문화의 교환이 일반화되는 새로운 시대에 그 교환을 규제하고 매개하는 주권권력이다.

 

 

 

Ⅱ. 本 論

 

  1. 세계 질서

 

   1) 세계 질서의 변화 : 근대적 세계질서에서 탈근대적 세계질서로 이행

 

근대적 세계질서

U N

(과도기적 기구

탈근대적 세계질서

국제적 권리

개별국가에

주권이 부여

제국적 권리

전 지구적인

권력이 존재

국제적 질서

전지구적 질서

국민국가 단위

국가 간 경계의 소멸

 

주권적 국민 국가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국제적 질서가 국가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탈근대적 제국 질서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은 현재에도 진행 중

 

최초의 국제조약으로 여겨지는 베스트팔렌 조약이래에 성립된 세계서의 개념은 1차 세계대전 시기와 국제 연맹의 탄생 무렵에 국민 가를 중심으로 한 ‘근대적 세계질서’로 발전하였으며 이 후 2차대전 막바지에 UN이 설립된 후 그 역사 과정에서 ‘탈근대적, 제국적 세계질서’ 개념이 구체화 됨.

 

▣ 개별 국가 내에 존재하는 법질서를 국제적인 법질서로 확장시키려는 법실증주의 법학자 켈젠의 이론은 UN의 창설에 다소 이상적이긴 하지만 이론적인 배경을 제시함.

 

   2) 세계 질서의 변화에 따른 권력의 이동

 

▣ 국민국가는 근대 세계체제의 성립과 더불어 지금까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지배해 왔음

 

▣ 국민국가라는 개념을 매개하지 않고서는 개인이나 사회의 존립 근거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국가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씨줄과 날줄을 이루어왔음. (맑스와 같은 혁명가는 국가를 인민에 대한 착취의 수단으로서 파악하고 국가의 전면적 폐지를 주장하기도 함)→국가가 곧 개인을 억압하는 권력의 화신으로서 여겨졌던 것. but,이 국민국가는 생산 및 교환의 전지구화에 따라 점차 그 경계가 희미해지고 또한 기존의 강력한 통제력을 잃고 있다. 그러나 국민국가의 쇠퇴가 지배권력 즉 '주권'의 쇠퇴를 뜻하지는 않는다.

 

기존의 지배권력을 대신하는 기구들은 존재하며 권력을 강화하고 있음. 오늘날 미국, 맥도널드, 마이크로소프트, 국제통화기금 등 세계적 규모의 영향력과 유통망을 지닌 기구들은 더 이상 국민국가의 경계에 가둘 수 없는 개념들. 이것들은 세계적 규모로 확대된 자본주의 경제에 걸맞는 새로운 기구이며 이 모든 탈국가적 메커니즘이 '제국'의 구성요소로서 새로운 권력기구이다.

 

▣ 고전적 의미에서 국가를 구성하는 것은 영토와 국민, 그리고 주권이다. 국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영토를 규범화하고 억압적・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통해 국민을 포획한다. 그러나 세계질서의 변화에 따라 이 전적 의미의 국가는 소실(되는 과정이거나) 되고 이제 (근대적 국민)국가는 ‘제국 Empire’이라는 전지구적 질서에 포섭된 것이다.

 

   3) 역사를 통한 제국 개념의 발전

 

▣ 제국 개념의 사법적 측면

  ‘제국’개념은 전지구적 질서 하에서의 권력에 대한 개념이다. 그러므로 권리와 통제와 같은 사법적 측면에서 분석하는 것이 그 이해를 위하여 용이할 것이다. 네그리와 하트는 이전에 존재한 '제국'의 개념을 은유와 상징으로 삼아 현재의 지배권력을 묘사하는데 이러한 비유를 통하여 현재 ‘제국’개념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예외의 개입권’을 이해할 수 있다.

 

고대세계에서 '제국'의 전형은 로마제국이다.

 

  ① 고대 로마 제국은 군주제, 귀족제, 그리고 민주제라는 세 가지 주요한 긍정적 정부 형태 모두가 자신의 질서 안에서 함께 기능한다는 의미에서 혼합된 구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틀은 또한 오늘날 전지구적 질서의 분석을 위한 유용한 지침을 제공한다. 이러한 틀을 통해 사람들은 세계은행과 같은 초국적 실체들에서부터 국민 국가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결국 국지적이고 지역적인 NGO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자율적인 상이한 구조 및 기구 형태들이 어떻게 하나의 일관된 전지구적 구성 안에서 함께 기능하는지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② 제국은 권력 중심이 없다는 사실, 즉 제국은 로마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의해 규정된다. 이러한 사실은 권력이 혼합된 구성의 다양한 수준들을 통해 분배된다는 의미에서 첫 번째 요소에서 생겨난다.

 

제국은 외부를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해 규정됨. (즉, 제국의 질서는 영원, 영구, 필연적)

 

사람들은 제국 개념은 항상 무제한적인 지배를 함의해 왔고 단지 늘날에서야 그 조건이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제국은 그 자체로서 정의이며 보편적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여겨지고, 이러한 제국의 자생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제국은 ‘정당한 전쟁 Bellum justum'의 개념과 ’전쟁할 권리 jus ad bellum'의 개념을 획득한다. 절대적 선인 제국은 자신의 영토 안에서 예외를 정의할 수 있고 개입의 예외성이라는 이름으로 ‘경찰권’의 권한을 얻는다.

 

이러한 고대 제국 개념과의 비유만으로 현대의 제국 권력의 모습을 통찰하기에는 부족 → 제국의 근본적인 원리인 생체 정치적 권력의 특성에 대하여 알아보아야한다.

 

 

  2. 생체 정치적 생산 (제국의 기본 동학)

 

   1) 생체 정치적 특성

 

‘제국’권력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으로서 미분화된 권력이 사회 전반에 내재화 됨

 

개인의 신체까지 통제하며 기호와 상징을 생산함으로써 욕망을 일치시키고 삶의 전반을 관리하게 되는 것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권력의 실체를 보지 못하게 되고 자신들이 통제 받고 있다는 인식조차 불가능하게 된다. 제국’의 기본 동학인 생체 정치적 생산에 대하여 인식함으로써 이러한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2) 미쉘 푸코의 분석

 

▣ 통제 방식의 변화 : 훈육사회에서 통제사회로의 이행

 

  푸코의 분석에 따르면 통제의 방식의 변화에 따라 훈육사회에서 통제사회로 이행함을 살펴볼 수 있으며 이는 ‘제국’권력 특성의 토대가 된다.

 

    가. 훈육사회

 

  관습, 습관, 생산실행을 생산하고 규제하는 배열장치나 장치의 분산된 네트워크를 통해 사회적 명령이 구축되는 사회로서 훈육제도들(감옥, 공장, 보호시설, 병원, 대학, 학교 등)을 통하여 정상과 일탈을 규정함으로써 통제한다.

 

    나. 통제사회 

 

  명령 메커니즘들이 더욱더 민주적이고, 더욱더 사회적 장에 내재적이며, 시민들의 두뇌와 신체 전체에 내부화 되어 있는 사회로서 유연하고 수시로 변하는 네트워크들을 통해 통제한다.

 

▣ 생체 정치적 권력 패러다임

 

    가. 통제 사회만이 생체 정치적 맥락을 자신의 배타적인 준거 지형으로 채택할 수 있으므로 두 개념은 서로 연결되는 것

 

    나. 훈육사회에서는 권력이 개인들의 의식과 신체에 완전히 침투하는 지점, 개인들의 활동 전체를 다루고 조직하는 지점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통제사회에서의 권력은 전체 사회 신체를 하나의 단일한 유기체로서 포섭함 생체 권력은 사회생활을 외부에서 규제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부에서 해석, 흡수, 재 접합하는 권력 형태로서, 모든 개인이 기꺼이 받아들이고 자발적으로 재활성화하는 필수적이고 결정적인 기능이 되어 삶(생활) 자체를 생산과 재생산하는 상황을 말함.

 

▣ 통제사회에서의 생체 정치적 생산

 

  생체 정치적 권력은 개인을 일방적으로 규율하고 통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호와 상징을 생산함으로써 개인의 욕망을 권력의 그것과 일치시키고 자발적으로 순응하도록 만듦 → 이것이 생체 권력의 삶의 생산이라 부르는 특징. 생체 권력은 사회적 생산과 밀접한 연관을 맺음으로써 개인을 보다 실질적이며 복합적으로 포섭하게 됨.

 

 

  3. 삶의 생산 (사회적 생산과 생체 권력 사이의 관계)

 

   1) 유물론적 해석/계몽의 변증법적 분석과의 차이(복합적이고 다원적인 분석)

 

▣ 맑스: 그의 유물론적 해석을 통해 자본 하에서 노동의 형식적 포섭에서 실질적 포섭으로의 이행이라고 부른 어떤 것을 인식

 

▣ 푸랑크푸르트 학파: 계몽의 변증법 안에서의 문화의 포섭이라는 밀접하게 관련된 이행을 분석함

 

▣ 푸코: 푸코의 이행은 근본적으로 맑스가 기술하고 그리고 푸랑크푸르트 학파가 재정식화하고 확장한 과정의 일차원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복수성과 다원성의 역설을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가 존재함 푸코는 이러한 지형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문화적, 육체적, 주체적 측면에서 규정하려고 시도함. 그러나, 푸코는 처음부터 자신의 연구를 안내했던 구조주의적 인식론을 벗어나지 못하여 자신의 사유를 만드는 데 성공하지 못하였는데, 이는 존재론적으로 그 실체를 규명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2) 들뢰즈, 가타리의 관점(푸코의 구조주의적 한계를 극복)

 

▣ 들뢰즈와 가타리는 우리의 관심을 사회적 생산의 존재론적 실체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생체 권력에 대한 탈구조주의적 이해를 제시해 줌. 그러나 이들이 발견한 사회적 생산성은 피상적이고 비결정적인 차원에 머무름

 

    3) 이탈리아 맑스주의자

 

이탈리아 맑스주의자들은 기존의 이론들보다 사회적 생산과 생체 권력과의 관계를 보다 잘 보여줌.

 

    가. 비물질적으로 되는 생산적 노동의 경향

 

  잉여가치 생산에서 대량 생산 공장의 노동력이 이전에 차지했던 중심적 역할이 오늘날은 점점 더 지적이고 비물질적이고 소통적인 노동력에 의해 채워지고 있다. 이러한 노동의 변화를“대중의 지성”, “비물질적 노동”, “일반적 지성”의 개념을 사용하여 설명하였다.

 

    나. 비물질적 노동의 중요한 세가지 측면

 

- 정보 네트워크 속에서 새로이 연결되는 산업 생산의 소통적 노동

- 상징 분석과 문제 해결을 하는 상호 작용적 노동

 

    다. 정서를 생산하고 조종하는 노동

 

- 산노동(living labor)의 사회적이고 소통적인 차원

  비물질적인 산노동에 대한 착취가 지닌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원은 사회를 규정하지만 동시에 노동 실행 전체를 통해 불복종과 반란의 잠재력을 발전시키는 결정적인 요소들을 활성화하기도 하는 모든 관계적 요소들 속에 노동이 스며들게 함.

 

 

  4. ‘제국’에서의 대안들

 

   1) ‘제국’은 생체 정치적 특성으로 인하여 실체가 보이지 않으며 그로 인해 간과될 우려가 있지만, 그 폭압의 정도와 성격은 이전의 시대보다 분명히 높아짐

 

   2) Negri는 이러한 혼돈과 어둠의 길속에서 진정한 해방의 가능성을 으며 대안을 제시하고 있음 → 그 대안은 바로 ‘대중(Multitude)’라는 개념으로서 정교화게 다듬어진 ‘제국’개념에 비하면 다소 투박한 감이 있지만 Negri는 ‘대중’을 통한 제국에의 저항의 가능성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음

 

▣ 대중(Multitude)의 개념

 

    가. 대중 개념은 인민(people) 개념과 대조 → 인민은 하나의 통일체로서 주민의 대표이지만, 대중은 축소할 수 없으며 복수성으로 남아 있음

 

    나. 대중 개념은 또한 민중(the mob), 군중(the crowd), '대중(the mass)' 관념들과 대비되어야 함 → 이러한 관념들은 복수성들이지만 수동적 주체들, 그들은 수동적이고 그래서 아주 쉽게 조종되기 때문에 위험한 것으로 생각됨. 반대로 대중은 능동적인 복수성이고 따라서 자율적일 수 있고 결국 민주주의적일 수 있음.

 

▣ 대중과 제국과의 관계

 

    가. ‘대중’의 개념이 ‘제국’의 개념에 대항하는 대안으로서 제시되었지만 대중은 결코 제국과 별개로서 분리되어 존재할 수는 없음

 

    나. 대중과 제국의 관계는 실존적인 관계인 것.

이러한 복잡한 대중과 제국과의 관계는 맑스가 자본주의를 분석했던 방식과 비교하여 이해할 수 있음

 

   3) 맑스적 분석을 통한 대중과 제국의 관계

 

▣ 제국: 대중에 의해 구성된 것이며, “대중(mass)이 제국을 낳은 것”

 

제국은 노동력의 구조적 저항을 약화시키고, 시간적 유연성과 공간적 유동성 모두를 강제하며 그 경향을 강화하지만 이와 꼭 반대로 본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구조를 수정하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제한다. 이 말은 제국의 건설이 제국에 선행했던 권력구조를 없애는 것이며, 전 지구적 자본에 반하여 국민국가를 소생시키려는 것과 같은 낡은 배치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기 위한 ‘전진의 발걸음’이라는 것이다. 즉,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적 지배의 분할을 넘어 관계의 국제화와 전 지구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산물이 바로 제국이며, 그런 의미에서 제국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를 종결하는 데 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진보적 성격에 관해 맑스가 역설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이다. 이러한 까닭에 들뢰즈와 가타리 역시 이러한 자본의 전지구화에 저항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과정을 가속화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 대중에 대한 제국의 권력

 

  제국은 자신이 무너뜨린 제국주의보다 더 잔인한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 투쟁의 방식

 

    가.‘투쟁의 국지화’에 대한 비판

 

     - 투쟁의 국지화: 사회적 주체들이나 국민적, 지역적 집단들의 체성에 근거한 저항의 장소들을 재조성하려는 노력으로서 국민(민족)을 외국자본 혹은 전지구적 자본의 지배에 대항하는 일차적인 방어 메커니즘이라고 인식하는 좌파 민족주의의 전통에 의지하는 것

 

     - 자본주의적 재배가 훨씬 더 전지구적으로 되고 있다면, 자본주의적 지배에 대한 우리의 저항은 국지적인 것을 방어해야 하고 자본의 가속화하는 흐름에 장애물을 건설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전지구적인 것과 국지적인 것 사이의 잘못된 이분법에 의거하고 있으므로 분명히 해롭다. (전지구적인 것은 동질성과 미분화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국지적인 것은 이질성과 차이를 보존하고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 → 동질화와 이질화의 생산 체제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 투쟁의 국지화는 적을 잘못 확인하고 그래서 적을 감춘다. 오히려 적은 제국이라고 부르는 전지구적 관계들의 특정한 체제이다. 결코 (상호)관계들 그 자체의 전 지구화에 반대하지 않으며 제국의 질화하고 이질화하는 흐름들에 아주 복합적으로 대결하여 리의 분석의 근거를 전지구적 대중의 권력에 두는 것이 더 낫다.

 

    나. 새로운 특질의 사회 운동의 출현 : 제국 권력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

 

     - 새로운 특질의 사회 운동의 근본적으로 새로운 특징

 

     ① 각 투쟁은 국지적인 조건에 견고하게 뿌리내리고 있을지라도 즉각적으로 전지구적 수준으로 도약하고 제국적 구성을 전반적으로 공격한다.

 

     ② 모든 투쟁은 경제 투쟁과 정치 투쟁 사이의 전통적인 구분을 파괴한다. 그 투쟁들은 경제적이고, 정치적이면서 동시에 화적이다. 그러므로, 그 투쟁들은 생체 정치적 투쟁이며 삶의 형식을 둘러싼 투쟁이다. ­ 국지적이고 개별적으로 보이는 투쟁들이 결국은 제국의 억압이라는 공통적인 근본 원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함

 

 

Ⅲ. 結 論

 

  안토니오 네그리의 관점에서 제국의 형성 과정에서부터 제국의 작동원리, 그리고 그 대안으로서 제시된 ‘대중’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 확대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논리는 겉으로는 개인의 자유의 신장과 그를 통한 공공 복리의 증대를 내세우고 있지만, ‘제국’의 개념을 통해 바라본 신자유주의는 그 이전의 폭압보다 더욱 정교하고 치밀하게 우리의 삶을 통제하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제국’은 생체 정치적인 권력으로서 우리 일상에 내재되어 있고, 의지뿐 아니라 신체까지도 통제하며 우리의 욕망까지 생산하는 권력 체제이다. 그러므로 그 실체는 잘 드러나지 않으며 여기서 그 위험성이 더욱 커진다고 할 수 있다. 각기 별개의 것으로 보여 지는 개별적 사회 운동 이 궁극적으로 ‘제국’권력이라는 동일한 원인에 의하여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통하여 제국 안에서 대중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by 서울시장 | 2010/06/07 10:39 | 스크랩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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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그리,하트, 다중, 세종서적,2008.

복사 http://blog.naver.com/biopolitics/92030541




 네그리·하트,『다중 -「제국」이 지배하는 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 세종서적,2008.

 

전쟁

 

짐플리치씨무스

- 전쟁은 유혈이 포함되든 아니든, 모든 권력 관계와 지배 기법의 일반적 모태가 된다. 전쟁은 인구를 통제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삶의

  모든 측면들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지배의 형식이 된다.

- 전쟁 은유는 스포츠, 사업 그리고 국내정치와 같이, 일반적으로 죽음을 야기하는 폭력이나 유혈을 포함하지 않는 경쟁형태나 세력관계

  에 적용된다. 이 모든 다툼들에서 사람들은 경쟁상대를 갖지만 실제로 고유한 의미의 적을 갖지는 않는다... 이는 위험,경쟁 갈등을 강조

  하는 것에 기여할 뿐이다. 그러나 다른 은유적 담론은 통일된 목적을 위해 사회적 힘들을 총체적으로 동원하는데 사용되는 전략적인

  정치적 수단으로서 불러내진다(가난과의 전쟁 등)

- 마약 혹은 테러리즘과의 전쟁 등은 전통적으로 이해되는 전쟁과 마찬가지로 무장 전투와 치명적 무력을 포함한다. 이러한 은유와 수사 

  를 사용하는 사례들에서 불확정적이고 실체가 없는 적들에 대한 실제적 전쟁들로 나아갔다

- 사회적 질서를 창조하고 유지하기 위한 전쟁은 어떠한 끝도 가질 수 없다. 그것은 권력과 폭력의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행사를 의미하게

  마련이다. 즉 그러한 전쟁에서는 승리할 수 없다. 더 정확히는 매일 반복해서 승리해야만 한다. 이리하여 전쟁은 치안활동과 실질적으로

  구분할 수 없게끔 되었다

- 전통적으로 외부로 간주되어 온 '적'과 전통적으로 내부로 간주되어 온 '위험한 계급들'은 점점 서로 구분할 수 없게 되고, 둘 모두가

  전쟁 노력의 대상으로 기능한다

- 정의(justice)는 근대적 전쟁 개념에 속하지 않는다. 근대의 현실주의적 전쟁 이론가들이 전쟁은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

  했을 때, 그들이 의도했던 것은 전쟁을 국가 간 정치에 연결시키고 그것을 도덕이나 종교와 같은 다른 사회적 영역들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 적을 악으로 제시하는 것은 적과 적에 대항한 투쟁을 절대적인 것을 만들고 그리하여 전쟁을 정치의 외부로 만드는데 기여한다

- 통제를 유지하기 위해 지배 권력들이 취하는 행위들이 그들 자신의 이해관계와 권위를 약화시키는 경향을 갖는 모순적인 상황...

- "'원스턴, 어떤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권력을 주장하지?' 윈스턴은 생각했다. '맞았어.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통해서야. 복종으로는 충분하지 않아.'"(『1984』조지 오웰)

- 이전에 전쟁이 법적 구조들을 통해 규제되었다면, 이제 전쟁은 그 자신의 법적 틀을 구축하고 부과하는 것을 통해 규제의 주체가 되었다

  (푸코)

- 근대의 혁명적인 전쟁들은 구성적 권력이었다. 즉 낡은 질서를 뒤집어엎고 외부에서 새로운 법적 규약들과 새로운 삶형태들을 부과하는

  한에서 토대구축적이었다. 그와 반대로 오늘날의 제국적인 규제적 전쟁상태는 현재의 질서를 재생산하고 규제한다

- 인권담론은 국민국가들이 자기의 국내 영토에서 행사하는 폭력조차 탈정당화하는 점진적 운동의 일부였다... 20세기 말경에 국민국가들

  은 자신들이 행사하는 폭력을 자국 영토의 외부에서도 또한 내부에서도 반드시 정당화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쇠퇴하는 것은 폭력이

  아니라 국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들이다. 국가가 자신이 행사하는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는 능력이 감소는...

- 전통적인 개념들은 인권을 모든 형태의 폭력에 대립시켰다... 그러나 홀로코스트와 코소보에서 '인도적 개입' 이후에 인권과 관련한

  다수의 입장은 인권의 이름으로 폭력을 옹호한다. 이 폭력은 도덕적 근거 위헤서 정당화되며, UN군의 푸른 헬멧에 의해 수행된다

- 폭력은 오늘날 도덕적이거나 법적인 어떤 선험적 틀을 기초로 해서가 아니라 후험적인 결과들을 기초로 해서 가장 효과적으로 정당화

  되는 것 같다. 폭력이 제국적 질서의 재생산으로 귀결되는 한 그것은 정당화될 것이다. 하지만 질서를 가져오지 못하거나, 현 질서의

  안보를 유지하는데 실패하는 순간 그 정당성은 사라질 것이다

- 1990년대 초 후투족(다수파)과 투치족(소수파) 사이의 대학살은 벨기에 식민체제의 유산(후투족에게 우월한 피식민 인종으로서의 특권

  부여)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으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당사자들에게나 중요할 뿐 정당성을 얻지 못한다. 오늘날의 구분은 단지

  전지구적 위계를 온존시키는 폭력인가 그러한 질서를 위협하는 폭력인가의 구분 범주만이 중요해 진다

- 헌팅턴은 여전히 낡은 패러다임에 고정되어 있다. 그는 냉전 블록들을 대체할 새로운 국민국가들을, 이제는 문명들 속에서 형성하려고

  노력한다. 이는 이데올로기적 적대를 문명적 적대로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

 

역반란들

- 탈근대 전쟁은 이동성과 유연성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지성,정보 그리고 비물질노동을 통합한다

- 적을 파괴하려고만 시도하는 전쟁은 오늘날 새로운 형태의 명령을 뒷받침 할 수 없다. 전쟁은 삶을 파괴해야만 할 뿐만 아니라 삶을

  창조하기도 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군산복합체 보다는 군생복합체(military-vital-complex)에 대해 말하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 군사에서의 혁명(RMA)... 1)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이 새로운 전투형식의 가능성을 제공 2)미국이 다른 국민국가들에 대하여 군사력에서

  압도적 우위 3)냉전의 종식과 함께 예측 가능한 대규모 갈등으로서의 전쟁 패러다임이 종말했다는 것...

- 이제 전투부대들은 규모를 줄여야 하며, 육해공의 역량들을 결합해야 한다. 또한 수색, 구조, 인도주의적 원조 등 다양한 유형의 임무들

  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 육군과 지상병력은 공군력 및 해군력 그리고 특히 첩보 및 정보 테크놀로지들과 비교해서 명백하게 부차적인 기능을 갖는다. 지상병력

  은 대개 일차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그 대신 소규모의 이동 그룹들로 배치되어 작전과 테크놀로지에 따라 공군, 해군 그리고 첩보 업무를

  통합적으로 수행한다

- RMA 이론을 옹호하는 기술주의자들과 전쟁의 미덕(virtues)을 중시하는 전통주의자... 전통주의자들은 9.11공격이 미국에 애국적 미덕

  과 자발적 희생정신을 회복시켜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미덕들은 전지구적 강대국이 자신의 힘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들이다

- 새로운 군인들은 살상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피정복 주민들에게 삶의 문화적, 법적, 정치적 규범들과 안보 규범들을 명령할 수 있어야

  한다

- RMA의 모순들...1)지속적인 부수적 피해(언제쯤 테크놀로지를 완전하게 다룰 수 있을까?) 2) 엄청난 오인사격(언제쯤 정보 및 명령구조

  들을 잘 조정할 수 있을까?) 3)병력이 직면하는 문제들(언제쯤 사회적,정치적,문화적 과제들을 수행하는 일에 더 잘 맞게 군대를 훈련시

  킬 수 있을까?

- RMA의 이데올로기는 점증하는 자살폭탄 테러와 모순된다...

- RMA는 전장의 공포를 삭제한다. 그러나 전쟁의 공포가 없다면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동기가 그만큼 덜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권력이 전쟁에서 전혀 고통을 겪지 않는다면, 그 권력이 전쟁을 종식시킬 어떤 동기를 갖겠는가?

- RMA의 미래의 군인 없는 전쟁이라는 이미지는 오늘날 여전히 전쟁을 수행하는 실제 군인들에 대한 고찰을 가로막는 것으로 보인다

- 미군의 프로필은 미국 시민의 프로필과 닮지 않았다. 사회 전체의 사회적 구조를 재생산하고 재현했던 공화주의적 군대의 전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수가 비정상적으로 많은 미군)

- 마키아벨리는 사회를 방어하는 데 있어서 공화주의적 이상이 갖는 가치를 찬양하면서, 전투에서 자유시민들이 대포보다 더욱 중요하다

  고 생각했다

- 낡고 고전적인 이론들에 따라 용병들의 반란을 예상할 수 있는가? 쌍둥이 빌딩과 미국 국방성에 대한 알카에다의 공격은 용병들의 반란

  으로 간주되어야 하는가? 사담 후세인을, 한때는 미국 정부의 봉급을 받았으나 이후에 자신의 옛 주인들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킨 용병

  대장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 조국에 대한 사랑이라는 관념의 표면 아래를 파헤칠 때, 그가 발견하는 것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공화주의적 카리타스 또는 공감

  적인 동료애이다

- 비대칭적 분쟁에서 하이테크놀로지의 응용은 종종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많은 경우에 적은 가장 선진적인 무기에 의해 위협받을 수

  있는 것과 같은 그런 종류의 자원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

- 전쟁과 평화 사이에 점점 차이가 줄어드는 경향은 이제 군사전략의 한 요소로 다시 등장한다... 필요한 것은 군사력과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심리적, 이데올로기적 통제를 결합하는 '전역적 지배(full spectrum dominance)'이다

- 9.11 이후 그들이 대면하는 적은 단일한 주권적 국민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네트워크이다. 적은 새로운 형식을 갖는다. 전통적인 국가간

  전쟁 전략가들에게 네트워크는 절망스러울 정도로 '표적으로 삼을 데가 없을 수'있다...네트워크적 적과 대결하는 것은 분명히 낡은 형식

  의 권력을 보편적 편집증의 상태에 던져 넣을 수 있다

- 역반란의 잔략들은 이제 더 이상 부정적인 기술들에 의존할 수 만은 없으며, 적극적 기법들도 창조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역반란은

  반란의 환경을 파괴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환경을 창조하고 통제해야 한다. 전역적 지배는 네트워크를 군사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심리적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으로 활용하여 네트워크 적들을 통제하는 이러한 적극적 전략의 한 가지 형태이다

- RMA의 변화는 명령 구조를 포함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그 속에 군사적 장치가 심어지는 사회 권력의 형태를 포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워싱턴은 다른 지배적인 권력들과의 협상 없이는 전지구적 질서에 대해 군주제적인 통제를 행사할 수 없다. 이것은 워싱턴에서 결정된

  것이 어떻든 이차적이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항상 전지구적 권력의 전체 네트워크와의 관계

  속에서 설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방주의적 전쟁들의 비용을 누가 지불할 것인가?

 

저항

by 서울시장 | 2010/06/07 10:35 | 스크랩 | 트랙백 | 덧글(0)

서평 <장기 20세기>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인 안토니오 네그리는 그의 제자인 마이클 하트와 쓴 공저 '제국'을 통해 선진국의 정치ㆍ경제ㆍ군사적 네트워크가 전 지구를 장악해가는 양상을 '제국'(Empire)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20세기 등장한 제국은 단연 미국이었다. 미국은 20세기 전반부터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를 잠식해갔다. 미국은 역사상 가장 강력했다는 로마제국에 비견될 정도였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미국의 힘은 급속도로 약해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전은 미국을 수렁에 빠뜨렸고, 금융경색이라는 격랑은 미국호를 좌초 직전으로 몰고 갔다.



이매뉴얼 월러스틴과 함께 '세계체제론'을 분석한 조반니 아리기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장기 20세기'(그린비 펴냄)를 통해 이 같은 미국의 위기는 자본주의가 지닌 내적 모순에 비춰 필연적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이탈리아 제노바의 축적순환, 네덜란드와 영국의 자본 축적체제 등 13세기부터 현재까지의 자본주의 역사를 분석하면서 미국이 쇠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제노바-네덜란드-영국으로 이어지는 각각의 축적 순환은 노동과 기계 같은 실물 부문의 투자가 증가하는 실질적 팽창 국면과 실물 부문의 신규 투자가 점차 중단되고 금융 부문이 주요 산업으로 부상하는 금융적 팽창 국면으로 구성된다.


특히 금융부문은 헤게모니 국가의 특권적 우위가 있는 부문인데, 이러한 금융적 팽창은 헤게모니의 쇠퇴국면에 반작용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헤게모니의 쇠퇴는 단선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다시 한 번 반전하여 자본의 수익성이 상승해 호황을 누리는 국면이 나타나는데 이를 '벨에포크'(belle epoque.경이적 순간)라고 부른다.


그런데 미국은 1960년대 말부터 시작해 실물보다는 금융쪽에 기대는 금융적 팽창국면으로 진입했다는 것.


즉,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경제체제를 재편했던 브레턴우즈체제가 붕괴되면서 고정환율제가 변동환율제로 전환됐고, 이동자본에 대한 규제가 제거됐으며, 공공채무의 증권화가 진행되는 등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시작됐는데 이는 미국의 자본의 수익률이 하락하고 20세기 초반의 실물적 팽창이 끝나면서 이를 금융적으로 해결하려는 증거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면서 1990년대 '신경제' 호황도 결국 '벨에포크'의 또 다른 증거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브레턴우즈체제와 발전주의 정책, 초국적기업망, 냉전체제, 국제연합이라는 틀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전개한 미국의 세계 헤게모니가 앞선 세계 헤게모니 국가들이 그 정점에 머문 기간에 비하면 매우 짧다고 지적하면서 이 같은 미국의 몰락과 더불어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두지만 대서양 연안의 각 국가들이 연합으로 지배하는 방식, 동아시아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중심지로 등장하는 방식, 그리고 헤게모니 국가가 부재한 카오스의 세계가 그것이다.


저자는 "영국 헤게모니에서 미국 헤게모니로 이행기에 평화주의적 사회세력들은 장기의 전쟁과 체계의 카오스의 시기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과거에 불가능했던 것이 지금 가능할지는 열린 의문이며, 그 대답은 우리의 집합적 인간 행위자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한다.


책을 번역한 백승욱 중앙대 교수는 "'장기 20세기'의 중요성은 자본주의의 경향적 법칙을 역사적 자본주의라는 문제의식과 결합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역사적 구조를 설명한데 있다"고 말한다.


656쪽. 3만5천원.

buff27@yna.co.kr

(끝)

by 서울시장 | 2010/06/07 10:17 | 서평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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